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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한국의 미술 역사 : 근, 현대

by Dreamer BiBi 2025. 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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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술 역사 : 선사시대-조선

 

한국의 미술의 역사 : 선사시대-조선

한국의 미술한반도 및 주변 지역에서 발생했던 미술을 말합니다.고분벽화, 불화, 문인화, 산수화 같은 평면 시각 매체 예술과 불상, 석탑, 도자기 같은 입체 시각 매체도 포함됩니다.한국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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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술의 역사

-근대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 시기 전통 회화에서는 장승업이 활약하였습니다. 장승업은 주로 중국 고사를 주제로 한 고사인물도를 그렸습니다.

이 시기에 점차 서양 문물이 유입되기 시작하였으며 대표적으로 서양 회화와 사진이 이 시기에 들어온 것입니다. 동시에 고희동 등의 화가들이 일본 등으로 유학 가서 서양 회화를 배워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유학생들 중 일부는 일본 유학 과정에서 서양의 모더니즘 미술을 접했으며, 이들이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모더니즘 미술이 한국에 유입되었습니다. 모더니즘 미술을 하기 시작한 미술가들의 경우 외국에서 순차적으로 발전한 사조들을 맥락을 따져가며 들여온 것이 아니라, 인상주의, 표현주의, 입체주의, 초현실주의 등 여러 사조들을 동시에 들여와서 취향에 따라 선택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때문에 그 사조의 원래 의도까지 따르는 경우보다, 외형상 보이는 양식을 따라 하는데 그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전통미술 쪽에서는 조석진, 안중식, 이상범, 김은호, 김기창, 허백련 등이 이름을 떨쳤습니다. 서양회화 쪽에서는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등이, 조각에서는 김복진 등이 활동하였습니다.

 

미술협회로는 조선미술전람회, 조선미술가 협회, 조선 서화미술회, 서화연구화, 서화협회, 조선사도 보국회, 조선 동양화가 협회, 조선 남화 연맹, 남종화전, 목일회 등이 등장했습니다.

이 시기에 활동한 미술가들과 미술협회 상당수는 친일행위에 가담했습니다. 특히 단광회, 반도 총후 미술전람회, 육군 미술전람회, 결전 미술전 등은 전쟁에 협력한 단체들입니다. 임응구, 김인승, 김만형, 손응성, 심형구, 박영선, 이봉상은 단광회 회원이었으며, 김인승, 심형구, 이상범, 김경승, 등은 결전 미술전에서 심사위원을 맡았습니다.

 

-현대

광복 이후 한국 미술계는 한반도 분단에 따라 남과 북으로 갈라졌습니다. 사회주의 계열 예술가들의 상당수는 월북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일부 예술가들은 강제로 납북당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전통미술보다는 서양미술이, 서양미술보다는 상업미술이 더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미술은 순수미술 분야든 상업미술 분야든 미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습니다. 일본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으며, 프랑스, 독일, 영국 국가로 유학을 떠나는 학생들이 늘었습니다.

해방 이후의 모더니즘이 그 이전의 모더니즘과 차별되는 점은 '향토성'입니다. 향토성이라는 주제는 이미 일제 강점기 때 선전(조선미술전람회) 체제에서도 심사위원들이 심사 기준으로 삼았던 중요한 주제입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때의 향토성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과 맞물려 원시주의나 미개함을 강조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 예술가들은 '서양의 기법과 한국의 전통을 동시에 계승한다'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향토성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고 사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 예술가들은 작품에<해학>성을 반영하거나 혹은 민속적인 소재를 찾아 표현하려 하였습니다. 이후 한국 모더니즘 미술은 근대화와 한국적 정체성, 이 두 가치를 놓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조율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해학성을 반영한 대표적인 작가는 이중섭, 최영림, 이만익이 있으며, 민속적인 소재를 표현하려는 작가는 김기창, 박수근, 장리석이 있습니다.

 

1970~1980년대

70년대에 들어서 한국의 모더니즘 미술의 주류를 차지한 것은 모노크롬 회화였습니다.

모노크롬이란 <한 빛깔>이라는 뜻으로 단색을 의미합니다. 서구의 기준, 특히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회화의 자율성" 개념에 맞추어 본다면, 한국의 모더니즘은 1970년대에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술 이론적으로 모노크롬 회화는 '회화 고유의 가치와 가능성'을 추구한다는 목표 아래 생겼으며, 한편 미술계 내부 사정을 보면 모노크롬 회화는 1950년ㄴ대부터 계속된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국전 체제 하의 미술가들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리얼리즘 미술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에 대한 반대로 추상 미술 운동이 시작되고, 모노크롬 회화가 등장한 것입니다. 김환기, 박서보, 이응노 같은 화가들이 이 시기에 활동했던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하지만 추상미술은 부작용을 낳았는데 순수하게 미술의 조형언어만 사용해 작업하려 하자, 미술계는 군사정권 시대에 벌어졌던 현실 사회문제와 동떨어져 버리게 되었고 대중은 추상화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영화, 방송, 광고 같은 상업미술과, 각종 스포츠 중계에 더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일부 작가들은 이 시기 군사정권의 요구에 못 이겨 예술적 신념을 꺾고 역사화 제작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 2000년대 들어 한국 미술계 일각에서는 모노크롬이라는 과거 명칭을 버리고 '단색화'라고 새롭게 이름을 붙이려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980년대에 등장한 민중미술은 이런 모노크롬 중심의 미술계와 당대 사회 현실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중 미술은 모노크롬 회화가 고수했던 형식적인 경향과 사회에 대한 무관심에 반발했으며, 미술이 사회의 일부로서 삶의 현장에 가까워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80년대 초 '현실과 발언'전을 계기로 민중 미술이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활발히 활동한 민중미술 작가로는 신학철, 임옥상, 최병수, 강요배, 홍성담, 안창홍, 오윤, 이종구 등이 있습니다. 민중 미술은 추상에서 다시 구상화로 복귀했고, 탈 모더니즘의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술 그 자체의 형식과 내용을 보면 미국의 벤 샨이나 레지날드 마쉬와 유사한 사회적 사실주의 경향에 더 가까웠습니다. 서구의 기준에서 볼 때, 한국에서는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포스트모더니즘이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이후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민주화 정권이 자리를 잡으면서 역으로 민중미술의 입지가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대중운동이 퇴조하고, 냉전 구조가 붕괴되고, 1997년 대한민국이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관은 점차 개인주의적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일반 대중들은 생계와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신경을 쏟게 되었으며, 그 결과 '풍요 속의 빈곤'이라 불리는 이상한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이에 예술가들은 독재 정권 타도나 통일 실현 같은 거창한 주제보다, 개인적인 미적 관심사에 몰두하거나, 보다 실질적인 인권 문제에 집중하게 됩니다.

 

이와 함께 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예술 경향이 한국 미술계로 들어오게 됩니다. 점차 개념미술을 시도하는 작가가 늘어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부터 김구림, 성능경, 이강소, 이승택 등의 행위예술 작가들은 이런 작업을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신기술의 영향을 받은 <미디어아트> 역시 한국 미술에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백남준이 점차 비디오아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면서, 국내 미술계에도 백남준의 작업이 소개되고 이와 유사한 시도를 하려는 작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국 내에서 비디오아트를 시도한 작가로는 박현기가 있습니다. 이후 미디어아트의 영향이 강해지면서 한국미술은 점차 혼성 예술, 종합예술화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이불, 장영혜, 양아치 같은 작가가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작가들입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미술은 어떨까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면에서 군사문화와 연관 짓고 있으며 농사나 공장에서의 물자 생산을 '농업 전투', '공업 전투', '생산 전투' 등의 단어로 표현할 만큼 아주 호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군인뿐만 아니라 철도공무원도 군대식 계급을 부여(역장-대위, 차장-소위, 개찰 담당-상등병, 기관사-중사 등) 할 정도입니다. 북한에서 예술 활동은 공산당의 정책 구현, 공산주의 선전, 공산주의적 인간 개조, 노동의욕 재고와 주체사상 강화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문예정책 또한 선전과 선동의 일환으로서 예술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창작활동은 이른바 공산주의 헌법 45조에 규정되어 있는 '민족적 형식에 공산주의적 내용을 담은 혁명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입각한 묘사 방법이 그 기조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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